[백광엽 칼럼] '착한 경제학' 대부의 퇴장

입력 2023-01-05 17:54   수정 2023-01-06 00:18

99년 전 ‘러시아 혁명의 아버지’ 블라디미르 레닌이 세상을 떴다. 처칠은 “혁명으로 망가진 소련을 되돌려 놓을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 갔다”고 장탄식했다. ‘지상낙원 건설’을 위한 무모하고 폭력적인 실험으로 치달을 소련과 세계의 운명을 예감한 것이다.

지난주 ‘한국 진보경제학 대부’ 변형윤 서울대 명예교수가 세상을 떴다. 처칠 화법을 빌리자면 “저급한 평등주의에 감염된 한국을 되돌릴 수 있는 최적의 인물이 사라졌다”는 비감이 앞선다. 변 교수는 분배와 복지를 빙자한 ‘퍼주기’로 타락해버린 ‘K분배 경제학’의 주창자다. 변형윤발(發) ‘돈 풀기’ 처방은 부동산 폭등, 성장잠재력 추락이라는 큰 주름을 안겼다. 결자해지라고 했으니, 과오도 영향력 있는 당사자가 바로잡는 게 최선이다. 하지만 그는 한마디 유감의 변도 없이 떠났다. 두고두고 갈등의 불씨가 될 배타적 성향의 무수한 추종세력만 남겼다.

대중적 인지도가 높진 않지만 이른바 진보진영에서 변 교수는 ‘숨은 신’에 비견 된다. 노무현·문재인 정부에선 제자 그룹인 학현학파가 경제 관련 요직을 싹쓸이했다. 이정우·강철규·홍장표·강신욱·김상조 교수 등이 주역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캠프의 경제 브레인도 학현 일색이었다. 그는 정치·사회·역사학 등 한국 사회과학 전반을 좌편향시키는 데도 혁혁한 공을 세웠다.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가 별세에 부쳐 ‘변형윤 경제학’을 상찬한 것도 그런 연유에서다.

하지만 학현학파의 평판은 파산 지경이다. 현실 정치에 무더기로 참여해 평등에 ‘올인’했지만 불평등만 키웠기 때문이다. ‘서민 삶을 지키겠다’며 풀어제낀 돈이 초유의 자산 불평등을 야기한 게 대표적이다. 심각한 소득 불평등도 불렀다. 노무현 정부 때 불평등지수(지니계수)는 5% 악화했다. 이전 30여년(1965~1997년) 보수 집권기의 16% 개선과 대비된다. 문 정부의 계수는 더 민망하다. 직전 이명박·박근혜 대통령 시절 각각 2%와 3% 개선됐지만, 문 정부 첫 2년(2018~2019년)에만 6% 악화했다. ‘다 같이 잘사는 사회’라는 학현의 약속이 ‘서민이 살기 힘든 세상’이라는 배반으로 막내린 결과였다.

‘맹목적 분배주의’는 성장도 저격했다. 노 정부 성장률은 5년 내리 세계 평균을 밑돌았다. 노골적인 ‘기업 적대, 노동 우대’가 자초한 굴욕이었다. ‘소득주도성장’이라는 학현 모델을 전면 채택한 문 정부의 성장률(코로나 이전) 역시 노쇠한 선진국이 다수인 OECD 평균에도 미치지 못했다.

학현의 실패 역사는 유구하다. 변 교수는 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시작부터 ‘그게 되겠느냐’며 딴죽을 걸었다. 경부고속도로·포항제철·중화학공업 단지도 모두 반대했다. 극렬했던 학계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몽니 역시 그들이 주도했다.

분배 성장 모두에서 낙제한 이유로경제의 정치화를 빼놓을 수 없다. 변 교수는 “외국인 직접투자는 대외종속을 심화시킨다”고 주장할 만큼 폐쇄적 발전모델을 고집했다. “고수출이 고성장을, 고성장이 저실업을 부른다는 논리는 입증되지 않는다”는 과격 주장도 펼쳤다. 원로·중견학자로 자리잡은 학현 후학들의 해법에서도 이분법이 넘친다. ‘돈 풀면 경제가 살아난다’ ‘복지를 하면 성장이 따라온다’는 식이다.

학현학파는 ‘인간의 얼굴을 한 경제’를 강조한다. ‘착한 경제학자’를 자처하며 감성 마케팅도 열심이다. 엄정함이 최고 덕목인 사회과학에 어쭙잖은 정의감과 엇나간 대의만큼 위험한 것은 없다. 진실을 질식시키기 때문이다. ‘K진보경제학 대부’의 후예들이 진실을 마주할 용기를 낼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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